와고 료이치 시인, 후쿠시마 현 거주
2013.04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집과 마을을 집어삼키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게다가 후쿠시마에서는 원전 사고까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6일째 되는 날,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방사선의 공포와 싸우면서 후쿠시마에 살고 있던 시인 와고 료이치 씨가 트위터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 자리 수였던 팔로워의 수가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와고 씨에게 말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 봤다.
3월 11일에 지진이 발생했고, 다음 날 후쿠시마 원자력 제1발전소의 제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어서 14일에는 3호기에서도 수소 폭발이 일어나, 제가 사는 곳에서는 피난을 가든지 아니면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본진인지 여진인지 알 수 없는 큰 흔들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방사선량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를 가리켜, 밖에 나가기는커녕 창문조차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중에 트위터에 제가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트위터에는 그 이야기만 올리고 말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시를 쓰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1행을 올렸습니다.
방사능이 내리고 있습니다. 조용한 밤입니다.
지진 후 6일째 되는 날의 일이었습니다. 이날부터 매일 트위터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간 정신없이 몰두했지요. 저의 현재 상황, 후쿠시마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싶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시의 팔맷돌」이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40회 또는 50회가 넘게 시를 써서 올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가 트위터에 쓴 시를 보고 「이건 시가 아니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긴 유치하고 변변찮은 말들이 죽 이어지고 있지요. 지진 이전에는 이미지 중심의 추상적인 시를 썼습니다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히 알기 쉬운 말, 잘 전달될 수 있는 말로 바뀌어 갔습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전 5일간은 말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전기도 없고, 가스도 없고, 가솔린도 없고, 물도 없고, 식량도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아니에요.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으로서,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지금까지 나 자신의 언어를 표현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무력하다는 생각,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도 6일째 되는 날 트위터에 시를 올리면서부터 침식을 잊고 시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차례차례 피난을 떠나고 있었지만, 저 혼자 아파트에 남아 집이 흔들려도 시를 썼습니다. 이때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그리고 정신없이 시를 쓰는 가운데,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당시의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읽어 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그저 죽어라 하고 시를 썼던 20대의 10년.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무튼지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를 썼던 그때의 제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와고 씨의 트위터를 정리한Togetter
http://togetter.com/li/117615?page=1
와고 료이치씨 Website
와고 료이치 씨 낭독 「높은 지대로」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