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J FOCUS] 대하드라마에 등장한 일본의 역사 속 인물 7인
글_김유리 기자
출처_일본어저널4월호 [NJ FOCUS] 대하드라마에 등장한 일본의 역사 속 인물
오다 노부나가, 사카모토 료마, 다케다 신겐, 미야모토 무사시.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 익숙한 이 사람들은 일본 대하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는 1963년부터 매년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이달에는 그 중 대표적인 인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간략하게 살펴보는 일본의 중·근세
대하드라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대는 왕과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무사 정권 사회로 변하기 시작한 중세~근세이다.
12세기 말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등장, 14세기 중반에는 교토(京都)를 본거지로 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가 탄생한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막부 최고의 실권자인 쇼군(将軍)이 사망한 뒤 후계자 문제 등을 놓고 10여 년간 내란이 이어지면서 막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는 동안 쇼군을 모시던 전국의 다이묘(大名. 영주)들은 각자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거나 몰락했고 일본 열도에는 강한 무사만이 살아남는 전국 시대(戦国時代. 1467~1573년)가 도래한다.
이후 전국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통일을 이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를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년)라고 하며 뒤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지금의 도쿄(東京)인 에도(江戸)에 막부를 설치하면서 에도 시대(1603~1867년)가 시작된다.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1534~1582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속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 지금의 아이치현(愛知県)인 오와리노쿠니(尾張国) 출신으로 어렸을 때는 바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고 가문을 이어받은 뒤에는 명석한 판단력과 뛰어난 전략을 통해 주변 영토를 손에 넣으며 세력을 확대해갔다.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의 요청으로 교토에 입성해 막부를 재건한 뒤에는 실권을 장악하고 대부분의 다이묘를 평정했다. 전국 통일이라는 큰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가신의 배신으로 습격을 받은 뒤 자결한다.
다혈질에 성격이 급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토지 제도 확립, 자유교역, 도로·교량 정비, 광산 개발 등 뛰어난 경제 정책을 실시하며 일본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사나다 유키무라 眞田幸村 1567~1615
올해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真田丸)>의 주인공. 본명은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로 사실 생전에는 유키무라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의 나가노현(長野県)인 시나노노쿠니(信濃国) 출신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셨는데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160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다이묘들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벌인 전투) 때는 도쿠가와 군을 몰아붙이며 크게 활약했다.
적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인정해 저승에 가면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인물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온몸의 군장을 빨갛게 통일한 ‘아카조나에(赤備え)’로 유명하다.
다케다 신겐 武田信玄 1521~1573
<이달의 마쓰리>에도 등장한 인물로 지금의 야마나시현(山梨県)인 가이노쿠니(甲斐国) 출신이며 본명은 다케다 하루노부(武田晴信), 신겐(信玄)은 불교에 입문하여 지은 이름이다.
거칠고 난폭한 성격 탓에 아버지의 신임을 받지 못했는데 1541년 가신들의 지지에 힘입어 아버지를 추방하고 정권을 획득한다. 주변의 적들을 물리치고 시나노 지역을 제압해 세력을 강화했으며 냉혹하고 지략이 뛰어난 무장으로 알려져 있다.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 달릴 때는 바람처럼, 고요할 때는 수풀처럼, 공격할 때는 불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전법을 이용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가이의 호랑이’라 불렸다.
다테 가문의 당주로 원래 성은 후지와라(藤原)이다. 전국 시대에는 오슈(奥州. 지금의 아오모리현(青森県)과 이와테현(岩手県) 북부)의 다이묘였고 에도 시대에 들어서는 센다이번(仙台藩)의 초대 번주가 되었다. 1584년, 가문을 승계받아 20대 초반에 오슈를 제패했는데 항복한 이들도 전원 몰살해버리는 비정한 무사로 많은 다이묘를 공포에 빠뜨렸다.
정서불안에 우왕좌왕하는 성격으로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협력하면서도 말을 잘 듣지 않아 결국 약속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어렸을 때 천연두로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이 때문에 독안룡(独眼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오이시 쿠라노스케 大石内蔵助 1659~1703
본명은 오이시 요시오(大石良雄)로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한 무사이다. 지금의 고베(神戸) 지역인 하리마노쿠니(播磨国)의 아코번(赤穗藩)에서 태어났으며 15세 때 아버지를 잃고 집안을 이어받아 21세에 중신의 우두머리인 가로(家老)가 되었다.
아코번의 영주인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가 관료 기라 요시나카(吉良義央)에게 칼을 들이댄 죄로 할복하자 오이시 쿠라노스케는 47명의 무사와 함께 복수를 위해 기라 요시나카의 목을 벤 뒤 주군의 묘 앞에 바친다. 이후 이들은 막부의 명에 따라 모두 자결했는데 이 사건을 다룬 ‘주신구라(忠臣蔵)’라는 제목의 가부키(歌舞伎)와 인형극 등이 인기를 끌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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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宮本武藏 1584~1645
만화 <배가본드>의 주인공이자 <원피스>에 등장하는 ‘조로’의 모델로 알려진 미야모토 무사시. 본명은 후지와라 하루노부(藤原玄信)이다.
에도 시대 초기의 전설적인 무사로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검술을 익혀 쌍검을 사용하는 니토류(二刀流)를 개발, 니텐이치류(二天一流)의 창시자가 되었다. 또 무도의 비법을 기록한 『고린쇼(五輪書)』라는 병법서를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칼을 쓰면서도 그림과 서예에 조예가 깊었는데 힘 있고 직선적이며 패기 있는 수묵화, 특히 새 그림을 잘 그렸고 그 일부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 1835~1867
지금의 고치현(高知県)인 도사번(土佐藩) 출신의 무사이자 사업가로 일본이 근대화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소설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이 국가 통치권을 되찾게 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이끌어낸 인물로 업적이 과장되었다는 평도있지만 통상과 해운에 눈을 떠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후 일본이 근대화를 이룩하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게 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역사를 개척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 일본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인물 1, 2위로 꼽힌다.
도움이 되는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