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에 생활교양을 지정하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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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 4.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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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입학생의 교육과정을 편성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 1학년 편성일 겁니다. 왜냐하면 2022개정 교육과정의 학점 배당기준이 4학점으로 바뀌면서 선택과목은 최소 3학점이상으로 편성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2학점으로 편성된 과목들의 학점 수정이 불가피한데요. 대부분 생활교양교과들입니다.

특히 1학년에 기술가정, 정보, 한문 등의 생활교양교과들이 학기당 2학점으로 지정과목으로 편성된 학교들이 많습니다. 제2외국어는 과목이 2~3개에 해당하여 보통 일본어, 중국어 등과 함께 2학년에 선택과목으로 편성되곤 합니다. 학교지정은 아니죠.

그런데 25년 입학생부터는 선택과목의 학점배당기준이 최소 3학점이므로 3학점으로는 기술가정, 정보, 한문을 모두 1학년이나 2학년에 학교지정으로 편성할 수 없습니다. 3학점으로 편성하면 학급이 8학급만 되어도, 24시간으로 1명이 TO증가 하기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생활교양 2개를 3학점으로 1,2학기 집중이수 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는 학교가 많습니다. 물론 기술가정/정보를 1,2학기 3학점씩 집중이수 시키면, 8학급의 경우, 12시간씩 확보가 됩니다.

1학년에 왜 생활교양교과를 지정할까?

그런데 말이죠. 왜 생활교양교과를 1학년에 집중이수까지 하면서 학교지정으로 강제편성해야하는거죠?

1학년은 공통과목위주로 수강을 합니다. 국영수사과를 모두 학기당 4학점으로 편성하면 20학점이 됩니다. 여기에 한국사 3학점, 과학탐구실험 1학점, 매학기 이수해야하는 체육 2학점을 편성하면 총 26학점이 됩니다. 추가로 음악/미술, 즉 예술 교과를 2학점 집중이수 시키면 28학점이 됩니다. 예술은 2개교과뿐이라 집중이수를 시켜도 서로 불만이 없습니다. 음악, 미술 모두 공평합니다. 또 절대평가이고 예술 필수이수학점을 위해 편성되는 것으로 학생, 학부모도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활교양은 성격이 다릅니다. 전혀 접점이 없고, 공통성이 없는 과목들이 5~6개가 모여있거든요. 기술가정, 정보, 한문,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이죠.

교양교과가 있다면 그것도 포함해야죠. 그런데 이 중 일부 과목을 1학년에 학교지정으로 고정 편성하면 나머지 생활교양교과들의 시수배정이 줄어듭니다.

가령 1학년에 기술가정/정보를 학기당 3학점씩 집중이수로 편성하면 생활교양교과의 필수이수학점 16학점중 6학점을 기술가정/정보가 가져가는 셈입니다. 선택이 아닌 지정과목이란 이유로 말이죠. 그럼 나머지 10학점을 두고 한문,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다시 기술가정 , 정보등이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렇잖아도 정보는 과목명이 매력적이고 자연계열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인데 1학년부터 지정이라는 어드밴티지(특혜)를 주고 시작하면 당연히 교사 TO는 2명 이상이 됩니다. 어쩌면 3명이 될 수도 있죠.

반면에 나머지 한문, 제2외국어 교과의 시수확보는 불리합니다. 10학점을 두고 학생 선택을 받아야하니까요. 기술가정, 정보가 6학점만 차지하는게 아니라 또 과목을 편성하니까 말이죠. 마치 사회교과 중 일반사회와 역사를 1학년에 학교지정으로 편성하고, 나머지 윤리와 지리를 2학년 선택과목으로 편성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럼 윤리와 지리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나마 사회는 공통사회라는 접점이라도 있어서 모여서 시수배정 논의라도 하지만, 생활교양은 전혀 다른 이질적인 교과들입니다.

교과중점학교는 3년간 27학점 이상 편성 권장

최근 정보융합 특성화, AI특성화학교들의 경우, 1학년에 정보를 편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25년 입학생부터 교과중점(교과특성화)학교의 운영기준은 3년간 27학점이상 해당과목 편성 권장입니다. 개설이 아닌 교육과정상 편성하고 운영하면 그만인것입니다. 27학점은 4학점으로 7과목입니다. 정보 4과목, 기술가정4과목 혹은 과학융선 1~2과목이면 충분합니다. 기존에는 학년제라 1, 2, 3학년에 정보관련 과목을 3개 편성했습니다. 1학년 정보, 2학년 프로그래밍, 3학년 인공지능 기초처럼말이죠. 그런데 25년 고1부터는 학기제입니다. 2,3학년에 4개학기에 걸쳐 과목을 편성할 수 있는셈이죠. 그럼 지금보다 더 많은 과목을 편성하고 학점도 4학점으로 편성가능합니다. 1학년부터 굳이 편성하지 않아도 충분한 과목 구성입니다. 교과중점학교 운영기준 어디에도 1학년부터 정보나 인공지능기초를 편성하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오히려 선택과목이므로 2학년때 사회, 과학탐구를 선택하듯이 정보역시 생활교양군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게 놔두는게 바람직하고, 학생과목선택권을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학교지정은 학생과목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과목선택권이란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과 듣고 싶지 않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1학년때는 해당교과와 관련된 창체활동을 운영하면 됩니다. 모든 학생에게 다양한 창체활동으로 정보관련 체험과 행사를 운영하는 거죠. 오히려 이 학생들이 2,3학년에 정보관련 과목을 더 선택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과학중점학교도 1학년때부터 물화생지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창체활동과 행사를 운영할뿐이죠.

원치않는 음식은 남기게 되어있어

생활교양교과는 학교지정과목이냐, 학생선택과목이냐에 따라 성취도가 크게 다릅니다. 제2외국어는 일본어, 중국어 또는 스페인어중에 1개를 선택합니다. 인간은 선택하기에 앞서 리스크를 먼저 생각합니다. 학생들도 가장 리스크가 적은, 본인에게 덜 불리한 과목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제2외국어는 비교적 고르게 성적이 분포됩니다. 오히려 상위권 변별이 어려울 정도죠. 그러나 기술가정, 한문, 정보는 다릅니다. 학교지정으로 오래 편성되다보니 학생 선택과 무관하게 모두가 수강합니다. 결국 깔아주는(관심없거나 원하지 않는)학생들이 많아 성취도가 낮습니다. E는 현재 60점 미만인데, 무려 75%이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2025학년도 학생들이 대입을 준비하는 2028대입부터는 내신이 5등급으로 평가되어 변별력이 지금보다 낮아집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교과반영과목을 늘리고, 등급, 성취도, 성취도별 분포비율과 세특을 추가 반영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서울 상위권 대학은 전교과를 반영할 겁니다. 또 내신 5등급제에서는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무조건 1등급을 받아야 수도권 상위권 지원이 가능합니다. 과연 학업성취도가 낮은 기술가정, 정보 등의 지정과목을 1학년에 꼭 두어야할까요? 학교 경쟁력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당장 미이수 예방지도와 보충지도가 늘어나지는 않을까요?

아시겠지만 수업과 평가는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정과목과 선택과목의 학업성취도 차이는 분명합니다. 원치않는 음식은 남기게 마련입니다.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게해야 소화도 잘되고 영양도 좋아지니까요.

지금은 2학점 쪼개기 편성이 가능해서 1학년에 생활교양을 2학점씩 학교지정을 주고, 운영해온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25년 입학생부터는 최소 3학점으로 편성해야합니다. 또 학기제이기때문에 학기당 학생 선택과목이 달라지고 시간표 구성도 달라집니다. 당연히 고정반, 합반 등의 반별 수업도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타임별 이동수업으로 운영해야 강의실 편성, 즉 시간표가 잘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선택을 받아야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언제까지 지정과목이라는 특혜를 받을건가요?

수업과 평가를 바꾸고 열심히 과목홍보하고 안내해서 학생들의 수요를 늘려야합니다. 자신의 교과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교과 수업과 평가를 바꾸고 적극 홍보해야

"한문은 아이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어떡하죠?", " 중국어 수요가 줄어드는데 걱정이에요"

물론 공감합니다. 저도 일본어를 가르치며 학생 선택에 의해 매년 교사 시수가 결정되는 교과니까요. 하지만 매년 학생 수요를 걱정하기에 수업과 평가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교직 20년 내내 말이죠. 전 한번도 학교지정으로 수업을 해본적은 없지만, 만약 학교지정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수업과 평가를 개선하고, 고민하지 않았을 겁니다. 공급의 질을 높이면 당연히 수요는 올라갑니다. 겁부터 먹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문도 수행평가로 평가하고, 진로와 연계된 활동을 부각하고, 세특의 장점을 어필한다면 충분히 선택하는 학생 있습니다.

저는 올해 일본어 평가를 100% 수행평가로 바꿨습니다.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변별이 되냐고 묻는 선생님이 있는데, 변별은 가능합니다. 수행평가도 지필과 똑같은 평가입니다. 많은 시간 준비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만들면 변별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동안 수행평가로 변별하지 못한 이유는, 정교하게, 완성도 있게, 난이도를 고민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않았기때문입니다. 수행평가는 실제 준비와 시행, 평가, 피드백까지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교사 교육과정인거죠.

제가 만든 25학년도 입학생 교육과정 편성안에는 학교지정과목은 없습니다.

모두 4학점 통일된 개방형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은 2,3학년에서 체육을 포함하여 8개를 선택하면 됩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교육과정입니다. 하지만 가장 정교하고 완벽한 교육과정으로 오류가 없습니다. 강의실 편성과 시간표 작성에 아무런 문제도 없고, 특정교과를 위한 지정 편성도 없습니다. 오로지 학생 수요에 의해 시수가 나옵니다. 모든 교과가 4학점으로 통일되어 교과간 시수배정의 불균형도 없습니다. 오로지 수업과 평가, 과목 안내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학점이 통일되어 더 듣고 싶은 과목은 더 들어도 됩니다. 국영수 대신 탐구나 생활교양을 더 들어도 됩니다. 3개 학년의 학점이 균형적으로 편성되어있고, 특히 1학년에 생활교양 지정을 두지않아 생활교양교과의 시수 배정도 공평합니다. 1학년 생활교양의 학교지정이 없어야, 국영수 과목의 학교지정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학교지정은 자동 시수확보라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누구든 지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을까요?

오랫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옳고 그름, 형평성과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곳이 학교입니다. 교육과정 편성표를 보며 공평하지 않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고 반박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과정을 공부하셔야합니다. 교육과정을 알아야 수업이 보이고 평가가 바뀌고 수요가 늘어납니다.

브라이언
브라이언 교육·학문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교사, 작가, 투자가, 아빠로 살아가는 자유인입니다.